2009년에서 2010년으로 해가 넘어가는 동안 국회를 들썩이게 했던 그 법안, 가운데 하나는 내 일과 연관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내 기준에서는 서너 가지의 커다란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지해 왔지만, 빠른 시간 내에 벗어나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겠다고 계속 생각해 오고 있었다. 이번 법안 통과는 그런 내 등을 떠밀어주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전에 가졌던 직업을 다시 이어가기도 싫어서 이래저래 우울한 새해를 맞았다.
그런 나를 이끌고 신랑 꽈베기가 극장을 찾아가 주었다.
(스포일러 조금 있음)
멋진 여우씨!!!
<판타스틱 Mr.폭스>의 판타스틱한 폭스 씨는 실로 판타스틱한 삶을 살고 있었다. 여우의 삶에 있어서 판타스틱한 일이란 무엇인가. 닭을 훔쳐서 바람과 같이 사라지는 일 아니던가. 인간들이 설치해 놓은 덫을 일부러 건드리는 베짱까지 가지고 있었던 폭스 씨는 어느 날부터인가 조용히 살게 되었다. 풍경화에 번개를 그려넣기를 즐기는 아내와 남들과 다르게 옷을 입는 아들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둑을 그만두고 칼럼니스트가 된 그는 굴집을 벗어나 언덕 위 나무 아래에 자리잡은 집으로 이사를 한다. 더이상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는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는 동안 폭스 씨의 눈은 자꾸만 언덕 아래 모여있는 세 곳을 감지하고 있었다. 인간이 경영하는 닭 공장, 칠면조 공장, 사과주 공장이었다.
결국 이웃의 주머니쥐와 함께 세 공장을 모두 판타스틱하게 터는 데 성공하지만, 인간의 보복이 시작되고 가족들과 근처에 사는 동물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흥미롭기도 했고 즐겁기도 했던 점 중의 하나는, 말을 할 수 있는 동물들이 야생동물처럼 도둑질을 하면서 살아가는 한편, 마음만 먹으면 칼럼니스트가 되어 인간처럼 살 수도 있다는 거침없는 설정이었다. 폭스 씨는 인간처럼 칼럼을 쓰고 가게에서 고기를 사먹고 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존재이지만, 자신은 야생동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모든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이 꼬이고 여려 동물들의 질타를 들으면서도 "어쩔 수 없었어, 나는 야생동물이니까"라고 고집스럽게 주장했던 폭스 씨가 나는 사랑스러웠다. 마치 <달과 육펜스>에서 스트릭랜드가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소. 물에 빠진 사람이 수영을 칠 수 있는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소. 우선 빠져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죽고 말지"라고 말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폭스 씨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 앞에 판타스틱이 붙을 수 있는 거다.
그리고 폭스 씨를 안심하고 사랑할 수 있었던 또 한가지 이유는, 그는 스트릭랜드처럼 가족을 버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여느 동물들이 인간세계에서 변호사, 재단사 등으로 살고 있으면서 별 소동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그들이 인간세계에서 사는 야생동물로 스스로를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폭스 씨는 가족이 있음에도 철없이 야생동물 운운하며 자기 하고싶은 대로만 하며 사는 것 같지만, 폭스 씨도 나름대로 자신을 알고 조절하고 있다는 사실.
'늑대' 말만 나와도 벌벌 떨던 늑대공포증 폭스 씨가 늑대를 무서워했던 이유는 아마도 야생동물의 삶에 대한 동경, 자신 안에 있는 그것이 늑대라는 순수한 야생동물(네 발로 걷고 겨울 산 속에서 살아가는)을 만남으로써 터져나가 자신을 절제하지 못할 것이 두려워서가 아닐까 짐작한다.
그러나 폭스 씨는 인간이 쓰는 말로 판타스틱 하니까. 늑대를 동경하고, 동경하며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폭스 씨의 대사 'For survival'을 듣자 눈물이 났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이상과 현실의 거리는 더욱더 멀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는 지금의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현업으로 돌아가, 누구도 읽지 않는 잡지의 기사를 끄적이며 살아가던 어느 날, 또 질렸다는 듯이 "나는 인간이니까" 라고 말하며 그나마 월급을 주던 직장을 때려치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랬으니까, 그랬고 또 그랬으니까.
그렇지만 다짐한다. 동경하며, 힘내자.